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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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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곡 (2010-07-08 14:35:33, Hit : 5398, Vote :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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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경 읽기 -원통 거사 [지대방]에서 퍼옴


화엄경, 공부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원통

    

화엄경은 그 양의 방대함 때문에 누구나 선뜻 손에 잡기가 어렵다. (강원에서도 일년 걸린다고 하지 않는가). 화엄경 안 읽는 다고 불제자로서 올바르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걸 꼭 봐야 하는가. 그래도 하도 여러 사람들이 화엄경 얘기를 하니 안 볼수도 없고, . .보자니 어디서부터 뭘 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 .좀 읽다보면 그게 그거 같고 우선 졸린다. . .결국 못 읽고 만다. 그러면서도 화엄경 얘기만 나오면 숙제 못한 것처럼 찝찝하다. . .




화엄경 한 학기를 공부하며 얻은 느낌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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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엄경을 본다면 뭘 봐야 하는가? 고은의 화엄경 소설을 보면 되는가, 아니면 포켓판 화엄경을 보면 되는가.
화엄경은 세가지가 있는데, 60권화엄, 80권 화엄, 40권 화엄이다. 스님이나 학자들은 한문본을 본다지만 일반 불자들이 꼭 그걸 봐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뭘 보나? 한글 대장경을 보아야 할 것이다.


세가지 다 보나? 한가지만 본다면 80화엄을 봐야 할 것이다. 한글 대장경으로 세권쯤 된다.
그런데 보현행원품은 40화엄에만 있다. 그러니 그건 따로 봐야한다.
80화엄 모두다 읽어야 하나? 중요한 품부터 보아야겠지만, 결국 쓸모없는 품은 없을 것이다
그럼 한글대장경을 그냥 보면 되는가?  시간이 무지 들겠지?  그리고 무지 졸리겠지?


2. 우선 우리는 화엄경과 화엄종을 구분해야 한다.
화엄경은 기원 1세기경에 몇가지 경전이 모여져서 결국은 주로 서북인도, 혹은 중앙아시아(실크로드)의 코탄지방(우전국)에서 여러차례 결집된 경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분량을 차지하는 입법계품은 주로 남인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그리고 화엄종은 중국에서 그 600년 후에 법장현수, 청량징관 등에 의해서 만들어진 중국 사상이다.
같은가, 다른가? 같다고 해도 경만 보면 중국 화엄종의 사상은 잘 알아챌 수 없다.
다르다고 하면 법장이나 청량은 경에도 없는 근거없는 망상들을 피운 것이 된다.
그러니 결국 둘다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흔히 전통적으로 화엄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중 국 화엄종의 사상이다.
그러니 경만 보아서는 그 뜻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법장이나 청량의 글만 보아서는 또 근거없이 구름잡기나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다.
경만 보아서는 안된다? 그러니 공부 량은 엄청 늘어났다.


참고로, 스님들이 공부하시는 강원의 4학년 대교과에서는 일년동안 80화엄을 주석해 놓은 청량 징관의 화엄경 수소연의초를 공부한다고 한다. 100권이다. (우리말 번역도 일부만 나왔는데,  한글 대장경에도 없다.)



3. 우리가 눈만뜨면 매일 화엄경만 보고 살아갈 수는 없다. 남이 벌어다주는 밥을 먹고 공부만 한다고 해도 일년내내 화엄경수소연의초만 본다고 해도 한번만 읽어볼 수 있을 뿐이다. 그거 한번 읽었다고 해서 화엄의 철리를 확연히 깨닫는 것도 아니다.
말로는 스님들도, 다 배우고 나도, "그게 그거 같고, 그저 막연한 느낌만 있고. . " 그렇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직업 때러치우고, 다른 사회적 가족적 도리 다 집어치우고 일년동안 그것만 본다고 해도, 그저 그게 그거같을 뿐일 것이다. 이거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 .
안 봐도 될 것 같다.



4. 화엄경을 대충 훑어본 나의 느낌으로는 반복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경우에 있어서 상황을 달리해서 뭔가 중요한 것을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고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뭔가 중요한 것, 그것이 뭔가를 안다면 (알기가 쉽지는 안겠지만) 다 읽지는 않아도 되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선 십지품이나, 여래성기품, 입법계품, 보살문명품, 야마천국게찬품 등)



그래서, 내 생각에는 몇가지 화엄경 개설서들을 함께 읽어가면서 거기서 강조하는 부분들을 찾아 읽고 저자와 함께 생각해 가면서 생각을 단련하는 것이다.
(내가 읽은 개설서들은 해주스님의 화엄의 세계와 기무라 기요다카의 중국화엄사상사이다)
단, 화엄에 대한 연구서는 대단히 많기 때문에 숲 보다는 나무를 보게 하는 책들이 많은데, 그건 초심자에게는 안 맞는다는 것이다. 초심자는 결국 숲을 못보고 지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몇가지 중요한 개념들을 익힌다.



5. 주석서들을 다 읽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청량징관의 화엄경수소연의초, 현수법장의 탐현기, 지엄의 수현기 등),이건 뭐 한글 대장경에 번역도 안 되어있는 것이다. 순전히 전문가용이다. 그런데, 화엄을 한다는 사람들은 걸핏하면 사사무애법계가 어떻고, 아니면 의상조사의 법성게가 어째서 초발심시변정각이라고 하고, 이사명연무분별이라고 하는데, 화엄경을 뒤져 보아도 그런 말은 안 나오고, 설령 나온다고 해도 어디 어느 구절에 나오는 지 찾을 수도 없다. 쉽게 말해서 거짓말로 해도 모르고, 화엄 사상이 아닌 것을 화엄사상이라고 하는 지도 잘 모를 지경이다.  
화엄을 다 읽지 않고는, 화엄 사상이 이렇다는데, 그런지 안 그런지 모르니까 그 사상이 내 사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건 평생 화엄으로 밥벌어 먹고, 화엄으로 명성을 드날리던 사람들의 말씀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안해도 된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 주석서를 자세히 본다면 사실은 같은 말을 알기 쉬게 풀이했다는 것인데, 결국 ‘그말이 그말’임을 알 수 있고, 결국 분량은 많아도 같은 방식을 되풀이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나라 스님들이 법회때 경전 풀이하듯이 했다는 말씀이다


게다가 현학적인 문자 풀이도 많고, 더욱이 지금으로 보아서는 말장난인, 혹은 생각장난인  그런 내용도 제법 있어서 다 읽지는 않아도 되겠구나, 혹은, 그거 모른다고 해서 뭐 진리를 모른다거나, 부처님 법을 모른다거나 그러는 데 결정적인 것은 아니구나 하는 부분도 많은 듯하다.


화엄의 깊은 뜻을 알려면 그 많은 논소초들을 다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게라는 뜻이다.
그러면 그것들은 필요없는 것인가?



내 생각에는 그것들을 즐기면 된다.
그리고 자기의 내공이 깊어져서, 높아져서 그것들을 구태여 다 읽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면 될 것이다.
선종에서는 그런 모든 경전을 꼭 보아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6. 그렇게 본다면 화엄경을 읽는 일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꼭 다 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를 보더라도 진리의 핵심을 알고만 있으면, 보는 일마다 즐기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즐기면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리 되면 화엄경을 봐도 졸리기만 하고 “그게 그소리”인 상태를 넘어설 수 있다.
노력은 해야 하지만, 꼭 다 읽어야 한다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①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 (한 열 번쯤?)  읽으면 화엄 사상을 이해한다?
그런건 아닌 것같다.


② 안 읽어도 이해한다? 그건 더욱 아니겠지;. . .


③ 뜻이 어려우니 독서백편 의자현이라, 백 번 읽으면 자연히 뜻이 들어온다?
화엄문중에서 머리 깍지 않고서는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꼭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본다.



그럼 뭔가? 뜻을 잘 이해하고, 여기저기 즐기면서 읽으세요. . 그런 말씀인데,
왠고하면 화엄이란 계속 같은 말씀을 반복하기 때문에 그 양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화엄조사들(법장, 의상, 청량)의 사상을 좀 알아야 졸리지 않게 뜻을 즐길 수 있고. .

많은 사람들 말씀이 화엄이란 장대한 오케스트라 연주 같다는 데, 결국 두시간 짜리 교향곡을 꼭 처음부터 두시간동안 꼬박 앉아서 들어야만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되는 대로, 형편 되는 대로,
10분 동안만 들을 수도 있고, 2악장만 들을 수도 있는 것과도 같다.
두시간동안 正裝하고 꼬박 앉아 있어야만 그 맛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사람들이 화엄을 접근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는 말씀이다.

즉, 몇번 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화엄의 뜻을 즐기면 된다는 말씀이다.   인생이 매일 반복해서 한백년을 사는 것인데, 좋은 말씀 좋은 뜻도 한번 보아서 되는 것은아니고, 자기한테 좋은 말씀을 반복해서 새기고 수련하고 즐기면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원효스님은 화엄경 소를 쓰시다가 집어치우고 실천행에 들어가셨다는 거다)



7. “漢文을 전혀 안 보아도 되는가” 라는 문제가 있다.
아직은 화엄사상 자체가 한문으로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한문으로 보아야 맛이 더욱 산다는 말씀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짧은 “의상조사 법성게”만해도 한문으로 읽어야만 맛이나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도  훗날 한문으로 안 읽더라도 그 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관련 문헌들(전문 용어나 개념, 그리고 논소들)이 한글화가 충실히 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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